원문을 참고문헌으로 인용할 때의 왜곡

2020.03.31

재인용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 보자. 간혹 독일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것이 분명한 학생이 보고서에 독일 서적이나 논문을 출처로 하는 인용문을 제시하는 경우를 발견한다. 이는 분명 다른 참고문헌에 인용된 것을 재인용한 것일텐데, 이러한 재인용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반드시 인용해야 할 내용이지만 원문은 찾을 수 없고 해당부분을 인용한 참고문헌밖에 구할 수가 없다면, 혹은 참고문헌에서 꼭 인용하고 싶은 내용을 찾았으나 그것이 참고문헌 내에서도 인용문이며 그 원전을 구할 수가 없다면, 재인용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인용한 참고문헌과 원전을 동시에 적어 주면 된다. 왠지 깔끔(?)해 보이지 않아서 원전만을 밝힌다고 하 더라도 독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겠으나, 학문적 양심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재인용인 경우 반드시 그 사실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재인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 원전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재인용하는 경우 문맥을 왜곡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홍진호: 『문학작품 감상문 및 보고서 쓰기』,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125-126쪽

원문의 참고와 관련하여, 최근에 재미있게 생각했던 일이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 최성민 선생님의 수업에서, 학생들 본인이 태어난 해보다 이전에 발표된 디자인 글을 찾는 과제를 받았다. 나는 몇 해 전에 헌책방에서 구매한, 91년도에 발행된 디자인 잡지의 칼럼을 선택했다. ‘신 마츠나가’라는 그래픽디자이너의 작업 세계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일문과 영문이 한 단락씩 병기되어 있었는데 일본어로 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하여 기재한 듯했다. (필자가 일본인이다.) 칼럼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美しさ、というものは本来ものものしさ、とか声高なものは必要とし ないのではないかと思う。
(나는 아름다움이란, 겉치레나 시끄러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RECRUIT Co.,LTD.: 「『Creation No.10』: Shin Matsunaga」, 六曜社, 1991, 92쪽

이를 영문으로 번역한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Beauty, I believe, is a phenomenon that innately requires no ostentatious display, no stentorian trumpeting.

원문(일문)만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자료로 제출하려 했는데, 문득 ‘stentorian trumpeting’이라는 단어를 보고 궁금증이 생겼다. ‘트럼펫’으로 번역될 만한 의미가 있었던가? 얼른 번역기를 사용해보니 ‘나는 아름다움이 선천적으로 허세 부리지 않고, 스텐토리아식 트럼펫을 요구하지 않는 현상이라고 믿는다.’라는 해석을 받았다. 스텐토리아식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럼펫을 다소 과장되게 연주하는 연주법의 일종이겠거니 싶은 생각을 했다. 원문의 ‘시끄러움’을, 영문에서는 트럼펫을 부는 구체적인 장면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재미를 느꼈다. 원문의 의미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개인의 번역에 따라서 의미가 다소 왜곡될 가능성이 있을 듯 싶었다.

이튿날, 친구와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잡담을 하던 중에 ‘그러고 보니, 스텐토리아식이라고 트럼펫을 시끄럽게 연주하는 주법이 있나봐’ 하고, 어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구는 별로 재미있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글을 정리하여 메일을 보내기 바로 조금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stentorian’, ‘trumpeting’을 다시 찾아보았다. 각각 ‘우렁찬’, ‘짐승 등이 울부짖는 소리’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원문에서 사용한 ‘시끄러움’과 동일한 의미였다. 스텐토리아식 트럼펫 주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문을 참고문헌으로 인용할 때의 왜곡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